인도인들은 대화하기를 매우 좋아한다. 리셉션에 초대 받아 가면 시시콜콜한 집안 이야기부터 국제경제, 문학 등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우리는 영어실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대화의 소재가 빈곤하여 주로 인도인의 말을 듣기만 한다. 많은 인도인들을 만나면서 참 머리가 좋고 기억력이 비상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인도인들이 자기 역사에 대해서는 많이 모른다는 것이었다. 인도역사에 대해서 화제를 끌어가면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인도인들이 나의 말을 경청하게 된다. 분위기를 압도할 수도 있고 인도인들과 더욱 친해질 수도 있다. 당연히 영국지배를 받은 부분보다는 인도 역사의 좋은 점을 칭찬하는 것이 좋다. 특히 유명한 관광지의 역사적 배경을 함께 설명해주면 대화가 잘된다. 인도인은 토론이나 대화 시 자신의 지적 능력을 은근히 자랑하는 습성이 있다. 특히 상층 브라만 계층은 지금도 베다 경전을 아침 저녁으로 외우는 것이 생활의 하나이므로 기억력이 뛰어나서 암기한 지식을 과시한다. 분위기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도 있다. 이런 때를 대비하여 인도 역사와 유적지의 관계 등을 사전에 공부해 가서 사용하면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런 것은 비즈니스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셉션에 가기 전에 간단히 읽어보고 갈수 있도록 인도 역사를 요약해 보았다. 또한 역사와 당시의 관련된 유적지를 함께 소개하였으므로 여행을 다닐 때 그 유적지가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인도 인도는 기원 전 50만년 전부터 인간의 활동이 시작되었다는 흔적이 남아있다. 기원전 6천년 경부터는 가축사육, 농경, 정착생활을 한 흔적이 신드, 발루치스탄 지역을 중심으로 남아있다. 이들 지역은 현재 인도서부 및 파키스탄 내에 있다. 기원 전 3천년부터는 글자, 도시유적 등이 펀잡, 신드 유역의 인더스강 일대에서 발견된다. 이 것을 인더스 문명이라고 칭하는데 그 중심이 도시문화로 알려진 모헨조다로, 하라빠 유적이다.(기원전 2500~ 1600). 이 시기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현재의 이라크)와 교역을 하고, 청동무기, 염색기술 등이 나타났다. 하라빠 글자모양은 드라비다어 또는 산스크리트 원형이라는 논쟁이 있다. @IMG3@ 아리안의 동진(東進) 인더스 문명은 철기의 베다 문명에 의해 몰락한다.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논쟁 있음, 필자 주) 아리안족이 베다 문명의 주인이다. 아리안이란 용어는 순수, 우월 등의 의미를 가지며, 원주민에 대하여 자기 종족의 동질성을 보유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들이 만든 4개의 베다는 이후 힌두 전통생활의 기본이 되었고 현재도 인도인의 생활윤리로 자리잡고 있다. 카스트의 4계급도 이때부터 형성되었다고 본다. 기원 전 2000년 경부터 시작된 베다 문명은 현재의 파키스탄에서 동쪽으로 전진하여 인도 서북부 펀잡 일대까지 지배하였다. 아리안족은 계속 동진하여 기원 전 1500 ~800년에 갠지스강, 야무나강 일대를 모두 차지하여 파키스탄에서 인도 갠지스평원까지 그 세력을 펼치며 기원 전 6세기에 이르러서는 마가다, 코살라, 쿠루, 간다라등 무려 16개의 군소왕국들이 활거하게 된다. 이들 나라중의 하나인 샤카족 왕실에서 기원전 560년에 석가모니가 탄생하였다. 이 기간 중에 인도의 유명한 2대 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가 저술되었다. 마하바라타는 기원전 600년경에 지어졌다고 하며, 라마야나는 발미키가 기원전 5~3세기에 저술하였다고 추측된다. 책 내용에 아요디아 왕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북인도 힌두성지, 불교성지 일대가 무대로 보인다. 기원전 6세기 말 인도 북서지방은 페르시아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기원전 326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인더스유역을 침공하였다. 마우리아 왕국 인도의 최초 중앙집권국가로 알려진 마우리아 왕국은 기원전 326년~184년 사이에 존속하였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야가 세운 이 나라는 현재의 비하르 주의 빠트나에 수도를 두었다. 마우리아 왕국은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로서 펀잡과 신드지역을 점령하고 서쪽으로는 인더스유역의 그리스 세력을 몰아냈으며 동쪽으로는 콜카타 지역, 남쪽으로는 현재의 안드라쁘라데시 지역까지 지배하였다. 마우리아 왕국은 정교한 관료체제로 넓은 지역을 통치하였으며 상업이 융성하였고 그리스의 외교사절이 방문하기도 하는 등 명실 상부한 북인도의 패자로 군림하였다. 찬드라굽타의 손자인 아쇼카 대왕은 인도 역사상 위대한 정복군주로서 북쪽으로는 카시미르, 네팔, 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남쪽으로는 타밀을 제외한 데칸고원 대부분의 지역을 복속시켰다. 그는 동쪽으로 오릿사 지역의 칼링가 전투에서의 대규모 학살 이후 전쟁의 비참함에 회의를 느껴 불교에 귀의한다. 기원전 269~232 기간 동안 재임하면서 통치지역에 stone pilla를 세우고 시리아, 마케도니아 등에 외교사절을 파견하는 등 국력을 확대하였다. 그는 불교를 장려하여 불교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마우리아 왕국의 번성은 이후 기원 후 1700년 경까지 인도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 정도가 되는 기틀을 구축했다고 평가된다.
1919년 3월 1일. 전국을 물들이던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94년의 세월을 거슬러 양산에서 다시 울려 퍼졌다. 지난 9일 국제라이온스협회 355-D(울산ㆍ양산)지구 제3지역이 주관한 ‘제7회 양산 3.1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열렸다. ‘양산 3.1만세운동 재현행사’는 기미년 3월 27일과 4월 1일, 양산에서 두 차례 진행된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지역에서 목숨 걸고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선열들의 애국충절사상을 기리기 위해 열렸다. 이번 행사는 물금읍 가촌리 항일독립운동기념탑에서의 위령제를 시작으로 진행됐다. 1부 식전행사는 종합운동장 야외주차장 특설무대에서 양산국악원의 천부신공과 덕계윈드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 정주영, 바이올리니스트 김유경 등의 공연이 이어졌으며 양산국악원이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연극을 선보였다. 2부 기념식에서는 나동연 시장, 장수철 국제라이온스 355-D지구 총재와 서민조 부총재, 이채화 시의회 의장, 김종규 울산보훈지정창 등이 참여해 이날 행사의 의미를 전했다. 나동연 시장은 기념사에서 “기미년 3월, 일제 강점에 항거해 일어났던 선열들의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지금은 들리지 않지만, 독립유공자분들의 애국정신은 지금까지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며 “선열들의 이러한 정신이 민족 국권을 되찾고 세계적으로 부강한 국가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게 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장수철 총재 또한 기념사를 통해 “오늘 만세재현행사를 통해 자랑스러운 내 조국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애향심과 주인의식으로. 후손들에게는 선열들의 의연함과 강직함을 본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채화 의장은 “우리 양산은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며 침탈당한 국권회복을 위해 항일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서 온 역사의 고장”이라며 “하북면 신평과 양산읍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짖던 감격의 순간을 기억하며 나라와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산시민취타대를 선두로 ‘양산종합운동장 야외주차장→운동장 정문→전자랜드→상공회의소 앞 사거리→경남은행 앞 사거리→옛 양산터미널→양산종합운동장’ 코스로 진행된 거리행진을 끝으로 행사는 마무리됐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권재현(18, 남부고) 학생은 “직접 참여해보니 애국심이 마구 생기는 것 같다”며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국제라이온스클럽에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으며, 김소현(18, 남부고) 학생은 “재현행사를 계기로 3.1운동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조선조 고종 건양원년인 1896년 경상도를 남북으로 분리하면서 양산은 경상남도에 속하게 됐다. 그로부터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양산은 조용한 농촌으로 인식돼왔다. 메기들로 불리던 수백만평의 들판이 빌딩숲으로 바뀌면서 상전벽해를 이루고, 수천개의 공장이 가동되고 끊임없이 중장비가 돌아가면서 공사가 진행 중인 역동적인 도시가 된 것은 최근 30년의 일이다. 양산의 도시화, 산업화를 촉발시킨 배경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국회와 사회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발전의 기반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밀어붙였던 것이 경부고속도로다. 하지만 그 노선도 경부선 철도와 같이 밀양, 청도 방향으로 건설되었으면 양산은 자칫 ‘낙동강 오리알’이 될 뻔 했다. 하지만 천년 고도 경주와 중화학 거점도시 울산과의 연결을 고려한 노선 책정으로 지금의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기에 이르렀다. 일각에는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도 있다. 특히, ‘1시·군 1나들목’의 원칙이 준용되던 상황에서 양산과 통도사 두 군대의 나들목이 개설된 것은 우리 지역으로 봐서는 행운이었다. 1972년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교통과 물류조건이 획기적으로 발전되면서 부산지역의 제조공장들의 이전이 가속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공장용지 조성사업이 줄을 잇기 시작한 배경이다.
음식의 궁합(宮合) 원래 궁합이란 의미는 혼인할 신랑ㆍ신부의 사주(四柱)를 오행(五行)에 맞추어 길흉(吉凶)을 점치는 방술(方術)인데 음식의 궁합이란 어떤 음식에 사용되는 식재료가 상생인지 상극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서로 극(剋)이 되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으며 반면에 서로 생(生)이 돼 승수효과를 주는 경우가 있으니, 같은 음식이라도 체질에 따라 어떤 사람은 약이 되고 어떤 사람은 탈이 나기도 한다. 때문에 여러 가지 음식에 사용되는 식품의 성질과 효능을 파악하고 이를 잘 응용하기 위한 약선 연구가들의 연구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쇠고기의 성분 최근 증가하고 있는 쇠고기의 주된 수입처는 호주, 미국, 뉴질랜드로 소의 종류는 쇼트혼, 헬레포트, 샤롤레이 등의 육우종(肉牛種)이다. 예로부터 고급요리의 재료로서 대중적이고 선호도가 높은 육류식품인 쇠고기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특히 리신, 트레오닌 등의 필수 아미노산과 리놀렌산 등의 지방산 및 각종 비타민, 칼슘, 유황, 인, 철 등의 무기질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효능 한방에서는 쇠고기를 보혈(補血)식품으로 구분하며, 맛은 달고 성질은 평하다 했으며 비위를 튼튼하게 하고 기혈을 도우며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정기를 충실하게 하는 식품으로 본다. 또한 손발이 저리고 감각이 둔해졌을 때도 좋다. 우황(牛黃)은 소아의 간질을 비롯한 뇌염, 뇌막염, 정신분열증 등에도 사용했으며 소의 꼬리와 낭신은 중추신경과 말초신경의 순환을 촉진하므로 신장을 보강하는 작용이 있고, 불면증과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에도 자주 이용한다. 부위별 명칭 쇠고기는 부위별 육질의 차이에 따라 조리 방법을 달리하고 있다. 근래에 와서는 큰 부위 명칭에서 더욱 세분화 되어 조리방법 또한 여러 가지 형태로 개발되었다. 예로부터 목 부분의 목심, 앞다리살, 사태, 갈비를 둘러싼 등 부위의 등심, 뒷등심 부위의 채끝살, 갈비 안쪽의 안심, 갈비살, 배 부위의 양지살, 뒷다리의 방심살, 설도, 사태 등 부위별로 명칭이 있었으며 조리방법도 여기에 준하여 사용됐다. 최근에 와서는 더욱 세분화됐다. ·등심살 : 꽃등심, 알등심, 살치살, 채끝살 ·갈비살 : 꽃갈비, 참갈비, 갈비살, 토시살, 제비추리, 안창살 ·앞다리살 : 부채덥게살, 꾸리살, 부채살, 앞다리살, 갈비덧살 ·양지살 : 업진안살, 치마양지, 앞치마살, 양지머리, 차돌박이, 업진살 ·설도살 : 설깃머리살, 삼각살, 보섭살, 설깃살, 도가니살 ·사태살 : 상박살, 앞사태, 뒷사태, 뭉치사태, 아롱사태 쇠고기의 부위별 세부 명칭은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축산업협동조합에서 협의를 거쳐 통일하게 되었다. 조리에 사용하는 부위도 종래에 사용하던 방법에서 많이 발전되어 앞다리살의 꾸리살이나 부채살 등은 구이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사태살에서도 뭉치사태는 육회용으로, 아롱사태는 육포용이나 장조림으로 쓰여 조리도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쇠고기와 궁합이 잘맞는 식품 1) 불고기와 들깻잎 : 들깻잎에는 쇠고기에 적은 칼슘 등 무기질이 많고 비타민A가 많이 들어있다. 특히 들깻잎에는 많은 양의 비타민C가 들어있기 때문에 혈액을 깨끗하게 하고 조혈을 돕는 작용도 한다. 거기다 양질의 섬유소를 가지고 있어 고기를 많이 먹었을 때 생기기 쉬운 변비를 예방하는 효과도 크다. 2) 두릅 : 쇠고기는 비타민함량이 고르지 못해 소화 흡수율이 떨어진다. 영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무기질이 많고 비타민A와 비타민C가 풍부한 두릅이 아주 잘 어울린다. 3) 배 : 쇠고기와 배는 환상적인 궁합이라고 할 수 있다. 배에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많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고단백인 쇠고기와 함께 먹으면 고기를 연하게 하고 소화가 잘 된다. 육회를 먹을 때나 갈비, 불고기 양념을 할 때 배를 넣기도 하는데, 배에 있는 ‘펙틴’이라는 성분이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고 한다. 4) 양파 : 양파의 영양분은 아주 풍부하다. 카로틴과 비타민C, 비타민E, 비타민B, 그리고 칼슘, 마그네슘, 아연, 셀렌을 비롯한 광물질이 많이 함유돼 있고, 외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액의 점도를 낮추어줌으로써 혈전의 형성을 예방하고 정상혈압을 유지시키는 전립선소A도 함유한다. 육류 중에서 쇠고기는 지방함유량이 낮기 때문에 양파를 곁들이면 비타민과 섬유질을 보충할 수 있어 양파와 쇠고기를 함께 조리한 요리는 고혈압과 고지혈 환자들에게 가장 좋은 음식이 된다. 5) 토마토 : 토마토 성분은 카로티노이드와 스테로이드성 알카로이드 배당체를 함유하며 사람의 백혈구 배양에서 세포분열과 DNA 합성에 효과가 있으며 쇠고기와는 아주 잘 맞는 궁합이다. 6) 기타 : 이밖에도 파인애플, 무, 버섯, 파, 피망 등과도 잘 어울리며 금기사항이 가장 적으면서도 고급스럽고 일반적인 식품이 바로 쇠고기다. 쇠고기와 궁합이 맞지 않는 식품 1) 부추 : 부추는 독특한 향과 맛으로 많이 먹는 채소로 칼로리도 적고 몸속의 나트륨을 배출하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좋다. 하지만 부추와 쇠고기는 둘다 열을 내는 음식으로 자칫 위점막을 자극할 수 있다고 한다. 2) 밤, 고구마 : 밤과 고구마의 주성분은 탄수화물이고 쇠고기는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로 소화에 필요한 위산의 농도가 달라서 같이 먹으면 소화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3) 버터 : 버터는 우유의 지방을 분리하여 크림을 만들어 응고시킨 것으로 평균조성은 지방 81%, 수분 16%, 무기질 2% 등이다. 지방이 많고 100g당 칼로리가 747kal라니 엄청나다, 버터에도 물론 필수지방산 같은 좋은 성분이 들어있지만 쇠고기로 스테이크를 하는 경우에 버터를 사용하면 풍미는 더 좋을지 몰라도 고열량, 고콜레스테롤 음식이 되므로 혈관 건강에 좋지 않다. 참고문헌 : 약선재료학(강무근, 최미애 외) 약선조리 이론과 실제(한복선 외) * 다음호에는 돼지고기의 쓰임새와 궁합 편을 소개합니다.
하늘에는 액운을 날려 보내는 액막이연이 떠있고 달집에는 시민들의 한해 소망이 담긴 소원지가 가득했다. 신명나는 지신밟기 놀이에 사람들은 함께 춤을 추고 활활 타오르는 달집을 보며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지난 24일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을 맞아 읍ㆍ면ㆍ동 곳곳에서는 지역발전과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가 열렸다. 시민들의 액운을 태워 없애는 달집태우기를 비롯해 지신밟기, 부럼깨기, 연날리기, 윷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는 보름달만큼 넉넉한 대보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흔히 ‘목’이라 부르는 가게의 위치, 즉 상권은 매우 중요하다. 신일호 대표가 첫 번째 가게를 문 닫으며 깨달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 대표가 상권 보다 더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덤’과 ‘시식’이다. “프랜차이즈 업체는 빵을 덤으로 주기에 한계가 있죠. 사실 덤을 주는 경우도 거의 없을 뿐더러 빵을 구입해서 파는 (프랜차이즈) 입장에서는 덤 하나가 매출로 직결되기 때문에 덤이나 시식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반면 동네빵집은 다르죠. 어차피 만드는데 들어가는 노력은 같으니까 반죽 조금 더 하고 재료 조금만 추가하면 넉넉히 덤을 만들 수 있어요” 홍보를 위한 시식도 중요하다. ‘샤인’이 대부분의 제품에 대해 시식을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프랜차이즈와의 차별화 전략이다. 한정된 제품에 대해서만 시식이 가능한 프랜차이즈 업체와의 차별화를 통해 ‘샤인’만의 맛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부터 유지해온 경영 방침이다. 신 대표는 청어람 아파트 상가에서 가게를 운영할 당시 1년 만에 프랜차이즈 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 역시 시식의 힘이라 믿고 있다. 물론 시식에는 빵을 만드는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맛있는 빵을 만들었다는 확신이 생기면 모든 제품을 시식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사람 입만큼 좋은 홍보 수단은 없다. 광고도 없이 1년에 한두 번 하는 세일행사로 동네빵집이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어차피 장사는 문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제빵 기술 없이 도전하는 건 반대입니다. 물론 좋은 목, 좋은 상권이 어느 정도 매출은 가져다 줄 수 있겠지만 결코 오래가진 못할 겁니다. 상권은 이동하기 마련이고, 좋은 장소는 누구든 노리는 장소니까요. 기술이 있다면 덤과 서비스에 인색하지 마세요. 프랜차이즈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본’을 입증하는 것 뿐입니다”
“예전엔 프랜차이즈란 개념 자체가 없었죠. 그저 동네에 한두 개쯤 있는 빵집. 말 그대로 동네빵집이었어요. 빵 장사는 사실 그때가 좋았죠. 프랜차이즈가 등장하면서 동네빵집이 내리막길을 걸은 건 당연하고요. 특별한 기술 없이도 창업이 가능해지니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요. 우후죽순 빵집이 늘어나는 요즘은 더욱 ‘기본’이 중요해 지고 있어요” 아침 식사를 거른 출근길. 버스 정류장 앞 코끝을 유혹하는 달콤 고소한 냄새. 냄새를 따라 시선을 돌리면 어김없이 발견하는 빵집. 그만큼 갓 구워낸 빵의 유혹은 강렬하다. 물금읍 범어리에 위치한 ‘샤인 베이커리’의 신일호 대표는 스무살 시절 공부 대신 기술을 선택했다. 빵을 굽기 시작한 그는 지난 22년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제빵 기술을 배우고 남의 밑에서 일을 시작한지 10여년이 훌쩍 지난 2003년 그는 자신의 가게 ‘샤인’을 열었다. 미래에 대한 큰 기대를 품고 남부동 청어람아파트 상가 한 켠에 문을 연 ‘샤인’.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샤인’의 주변 환경은 신 대표의 기대를 허물기 시작했다. 지역 상권이 옮겨가고 가게 앞 버스정류장마저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신 대표가 가게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목, 즉 ‘상권’이 변해버린 것이다. 신 대표는 결국 5년 만에 가게 문을 닫고 현재의 위치 물금읍 범어리 효성아파트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게를 옮긴 지 만 4년째인 최근에야 신 대표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직접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해 9년이 걸린 셈이다. 맛의 비결, 하루 수차례 구워내는 빵 다른 ‘맛집’들과 마찬가지로 신 씨의 가게 ‘샤인’에서 구워내는 빵은 맛 좋기로 소문이 났다. 빵이 맛있는 이유를 물었다. 비결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직접 만드는 빵을 자주 구워냈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는 것도 당연. “저희 집 빵은 저희가 직접 구워내기 때문에 맛있죠. 물론 오랜 기간 노력해 온 실력이 기본인 상태여야 가능한 것이지만. 하루에도 수차례 빵을 구워내니 손님 입장에서는 언제나 갓 구워낸 빵을 드실 수 있죠. 갓 구워낸 빵과 시간이 지난 빵은 맛에서 확실히 차이를 보입니다. 저는 이 점이 동네빵집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대표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선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조금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빵을 최소 단위로 자주 구워내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갓 구워낸 빵과 시간이 지난 빵은 향기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때문에 어떤 빵이든 하루를 넘겨 파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날 만든 빵은 당일에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한다. 입맛 까다로운 소비자들은 하루를 넘긴 빵을 귀신같이 알아채기 때문이다. 실제 ‘샤인’의 주방은 항상 빵 만드는 손놀림으로 분주하다. 신 대표와 함께 4명의 직원이 하루 종일 빵을 만들고 오븐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이처럼 빵 맛의 경쟁력은 얼마나 신선하냐에 달려있기 때문에 경영을 하는 입장에서는 하루에 소비되는 빵의 양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 대표는 현재 위치에서 만 4년의 경영 끝에 최근에야 하루 빵 소비량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날씨 변화가 심한 날은 신 대표의 경험도 소용없지만. 여기에 좋은 재료도 추가된다. ‘샤인’이 질 좋은 재료를 쓴다는 이야기는 신 대표가 아닌 손님들의 증언을 통해 나온다. 단골들은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과일은 먹거리 보다는 사실 눈요기용인데 샤인 케이크는 그 한조각 과일마저도 맛이 다르다”고 칭찬한다. 이처럼 좋은 재료를 사용해 뛰어난 기술로 방금 구워낸 빵이 맛이 없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치열한 환경, 창업 신중할 필요” “한 때 제빵업계에 발을 담근 것에 대해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빵을 배울 때는 배우는 일이 힘들어서, 가게 주인이 된 지금은 경영이 쉽지 않아 매 순간 후회가 밀려왔죠. 쉬는 날도 없이 일하다 보니 더 힘들더군요. 그래도 돌아보니 어느새 20년간 같은 길을 걸어왔네요” 빵집은 이른 아침 출근길 직장인들의 코 끝을 유혹해야 하고 퇴근길 직장인들의 발길도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빵집은 항상 새벽에 문을 열고 밤늦게 문을 닫는다. 신 대표 역시 빵을 배우기 시작한 20년 전부터 가게 사장이 된 지금까지 매일 6시 30분 출근해 가게 문을 연다. 밤 11시 가게 문을 닫는 순간까지 신 대표는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맛있는 빵을 팔기 위해 고민한다. 신 대표는 나지막하게 고백한다. 20년 동안 힘들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고. 그렇게 힘들게 20년 간 반죽을 만져온 그는 어느새 ‘사장’이 됐다. 맛있는 빵집으로 동네에 소문도 나고 단골도 많이 생겼다. 자신 밑에서 제빵 기술을 배우는 직원만 4명이다. 어려운 이웃에 나눌 만큼 여유도 생겼다. 20년 전 꿈꿔온 미래가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20년을 걸어왔지만 환경은 점점 더 힘들어 진다. 포화상태에서도 여전히 늘어나는 빵집들, 특히 ‘이름’을 앞세워 상권 곳곳에 스며드는 프랜차이즈 업체와의 경쟁은 언제나 힘이 부친다.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선 제빵업계. 이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 예비 제빵업주들에게 신 대표는 진심어린 조언을 건냈다. 실력이 없으면 덤벼들지 말라고, 제빵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치열한 환경을 견뎌내기 힘들 거라고 충고한다. “앞으로도 제빵업계의 힘든 경쟁은 계속 될 겁니다. 그나마 저는 20년 세월 동안 시행착오 끝에 얻은 값진 경험들이 있어 다행이죠. 혹시라도 빵집 운영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 있으시면 한마디 충고하고 싶네요. 기술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권하고 싶지 않다고…. 프랜차이즈라면 기술 없이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힘든 경쟁은 똑같아요. 다시 생각해도 딱히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많이 고민해 보세요.” 장정욱 기자 cju@ysnews.co.kr
인도 현지에서의 기업활동에 없어서는 안 되는 현지인 관리, 우리 습관대로 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인도인 현지직원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사항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체면을 중시하는 인도인 채용 시 근무지침을 읽고 사인하도록 하라. 인도 직원을 채용할 때 복무규정을 제대로 숙지시키고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중에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는 것 보다는 처음부터 방향을 정하고 회사에 대한 이미지를 제대로 심는 것이 좋다. 특히 인도인은 업무상 잘못을 해도 절대로 잘못했다고 시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중에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도 채용 시 근무지침을 숙지시키고 이에 대해서 사인하도록 한다. 인도인은 서류에 사인하는 것을 상당히 꺼린다. 나중에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국인이 인도를 지배하는 동안 사용하던 방법 중 하나다. 남이 안 보는 곳에서 잘못을 지적하라. 인도인도 한국인처럼 체면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따라서 사무실에서 다른 직원이 보는 앞에서 야단을 맞으면 모욕당했다고 생각한다. 영국인이나 일본인 관리자들은 잘못을 지적할 때는 직원을 자기 방으로 별도로 불러서 조용히 야단을 친다. 상세한 지시와 반복 확인 지시할 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부내용까지 정확히 해라. 한국인 관리자는 업무지시를 대충대충한다. 국내에서는 같은 환경에서 같이 일해 온 직원들은 윗사람의 말 한 마디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다. 그러나 인도인은 자라온 환경이나 문화가 다르다. 인도 직원들은 지시한 일만 수행한다. 따라서 명쾌하게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고 한국인 직원한테 지시하듯이 대충대충 지시하고 다른 것은 알아서 하라고 하면 인도 직원은 아무것도 못한다. 한국인 직원은 지시한 일을 시행하는데 따르는 사소한 일은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처리해 나가지만 인도 직원은 그러지 않는다. 그 사소한 문제에 대해 다시 지시를 받기 위해 일을 중단하고 기다린다.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처리해 나가는 습관이 되어있지 않아서다. 지시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반복 확인해라. 인도 직원에게 지시 내용을 반복하게 한다. 알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한다. 절대로 못 알아들었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따라서 알았냐고 묻지 말고 그 내용을 말해보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지시와는 동떨어진 보고서가 올라온다. 사소한 일도 지시를 받으려는 것은 인도인이 타율에 젖어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후에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크다. 인도인들의 이러한 태도가 답답한 면도 있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국 직원들처럼 사소한 일로 생각하고 스스로 처리한 것이 큰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잘못에 대해 서면 경고장을 직원의 중대한 잘못은 기록하고 경고장을 주어라. 한국인 관리자는 직원이 중요한 잘못을 하면 큰 소리로 야단치고 나서는 끝에 가서 다음에는 잘하라고 어깨를 두들겨주는 인간미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다음부터 잘해야겠다는 직원의 경각심 보다는 오히려 기강해이를 가져오기 쉽다. 큰 소리로 야단치기보다는 조용히 불러 잘못한 점을 지적하고 자술서를 내게 하거나 회사 이름으로 경고장을 주어야 한다. 인도에서는 문서화하는 것이 큰 효과가 있다. 혹시 나중에 직원을 해고해야 하는 경우 경고장이나 잘못을 시인한 문서들이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인도는 노동조합이 매우 강하고 직원을 해고했을 경우 법원에 제소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때 이런 문서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대한 잘못이나 법규위반의 경우에도 함부로 해고하기 어려운 것이 인도다. 복무규정에 수당이나 급여삭감, 해고조건 등을 명확히 해라. 특히 시간외 수당 지급기준 등은 퇴직 후 법적으로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큰 부분이므로 명확한 규정과 사후 기록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실업율이 매우 높은 나라이므로 인도인들은 급여나 수당 삭감, 해고 조건들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이러한 규정은 직원들의 근무 기강을 확립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가정부 관리는 어떻게 하나 인도에 주재하게 되면 가정부(아야), 운전기사, 경비원(쪼끼다) 등을 고용하게 된다. 대개 먼저 근무한 한국인 가정을 통해 소개를 받거나 임차한 집 주인들로부터 소개를 받는다. 처음 인도에 온 한국 부인들은 대개 가정부한테 큰소리로 야단을 치거나 일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쉽게 갈아치운다. 심지어는 싸우고 나서 내쫓기도 한다. 물건이나 돈을 훔쳐갔다거나 일을 잘 안하고 게으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지인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팁, 보너스, 가불금 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개인적인 고용일지라도 집에서 지킬 사항들을 간단히 계약서 형태로 작성하는 것이 좋다. 회사 복무규정을 적절히 수정해 사용해도 무방하다. 가불금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인도 하층민은 아이들 학교 입학이나 집안의 큰 일이 있을 때 가불을 요청한다. 사정을 들어보면 딱하고 그렇다고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 줄 수도 없다. 가불한 후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가불금은 월급의 2배 정도를 한도로 지불하고 육개월 정도에 걸쳐 월급에서 공제하도록 한다. 가불금이 너무 많으면 매월 급여공제가 커져서 생활에 문제가 발생한다. 가정부ㆍ운전기사ㆍ경비원 관리는 인정만으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가 인도를 떠난 후에도 그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측은하다고 여겨 그 사회의 질서를 깨면서까지 그들에게 잘해주면 나중에 우리가 떠난 후 더 큰 생활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한국 주재원이 떠난 후 그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인도인 운전기사나 가정부가 전보다 더 고생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가정부와 마찰은 사전 예방 가정부와 티격태격하지 않는 방법을 하나 더 알려준다. 외출할 때는 안방은 반드시 문을 잠그고 외출해라.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모두 안방에 두면 된다. 주부와 가정부와의 문제는 현금이나 귀중품의 도난이 대부분이다. 부엌에서 식품 등이 소소하게 없어지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나눠먹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살 수 없는, 한국서 가져온 식품의 경우는 주부 입장에서는 없어지면 속이 쓰리다. 이런 중요한 식품류 몇 가지는 관심을 가지고 체크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인도 상층민들은 냉장고에 자물쇠를 채우고 다니기도 한다. 하인들의 손버릇이 나쁘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예 자물쇠를 채우는 것이다. 스스로 조심하지 않고 무엇이 없어지면 가정부만 큰 소리로 야단친다거나, 이런 문제로 해고하고 다시 채용하려고 하면 나만 피곤하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항상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웅상지역은 19세기까지 울산에 속해 있었다. 조선 태종때 경상도 울산군 서면이었다가 정조 10년에 웅촌면으로 개칭되었다. 고종 33년인 1397년 8월에 전국 8도를 13도로 분할하면서 용당(龍塘) 이남은 웅상면으로, 대여(垈如) 이북은 웅하면으로 하였다. 웅상이 양산군으로 편입된 것은 고종 43년(1906년) 9월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면제(面制)가 시행되면서, 용당리, 삼호리, 주남리, 소주리, 명곡리, 주진리, 평산리, 덕계리, 매곡리의 9개 법정리가 확정돼 최근 4개 동으로 분리될 때까지 우리 귀에 익었다. 이곳은 천성산 줄기가 가로막혀 군청 소재지인 양산과는 지리상이나 정서상으로 상당한 이질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었지만, 부산의 금정구와 기장면이 인접하고 울산광역시와도 경계하는 특성으로 제조공장의 이전과 도시 서민들의 이주가 촉진되면서 짧은 기간에 10만 인구를 수용하는 지역으로 급부상했다. 1975년에 지정된 소주공업단지의 조성은 당시까지만 해도 순수한 농경지역이었던 이곳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농공(農工) 병행지역으로 바뀌면서 1979년 서창지역에 18만㎢ 규모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됐다. 또 1987년 덕계농공단지가 추가로 개발되는가 하면, 덕계, 평산리 일대에 소규모 제조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서창지구에 25만평에 달하는 택지개발사업이 추진됐고, 1997년에는 주남리 천성산 기슭에 4년제 대학인 영산대학교가 문을 열었다. 주거환경이 발전하면서 전입하는 주민들이 늘어나자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붐이 일어났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10만에 육박하게 되었고 행정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2007년 4월 웅상읍은 4개 동으로 분리되고 출장소가 설치됐다. 서창동, 소주동, 평산동, 덕계동 등 4개 동의 인구는 지난해 말 현재 9만2천명이다. 이곳 주민들의 가장 큰 희망은 부산도시철도의 웅상 연장이다. 오래전부터 이 지역 각종 단체와 학교, 기업체가 한마음이 되어 ‘부산지하철 유치 운동’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부산 노포동에서 웅상지역 사이의 일부 자연마을 구간의 수요가 부족함으로써 경제성 검토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해 아직까지도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신 만성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는 7번 국도의 우회도로 공사가 시행중이다. 웅상을 관통하는 회야강은 최근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지만 한동안 웅상발전의 걸림돌이 되어왔다. 회야강의 하류에 설치된 회야댐 때문이다. 울산시민의 식수로 활용되기 때문에 상류에서 유입되는 원수의 통제가 불가피한 것이다. 대규모 아파트나 공장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주변 교통과 환경의 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생활오수나 공장폐수의 발생에 따른 입지 제한을 심하게 받아왔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회야하수처리장의 증설이 이루어지면 이런 문제들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먹는 물 문제도 주민들의 요구사항으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 낙동강 물을 원수로 쓰고 있지만 서부 양산 주민들의 식수원인 밀양댐 물을 제공해 달라는 요구다. 수백억원의 관로 매설 비용이 드는 사업이라 쉽게 추진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돼야 할 문제다. 나동연 시장 취임 이후 ‘퍼스트 웅상’이라는 슬로건 아래 웅상주민들의 소외감 해소에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 주민센터가 순차적으로 신축되고, 새 출장소도 착공됐다. 웅상도서관이 새로 단장돼 가동되고 있고 소주동에는 영어도서관이 들어설 전망이다. 평산동 체육공원과 명곡근린공원도 마무리가 한창이다.
강무근의 요리이야기가 매월 독자들에게 선보인 지 2년이 되었습니다. 2013년 새해를 맞이해 애독자 여러분들에게 보다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한방요리인 약선요리에 기초하여 음식의 궁합과 약선, 가정에서 응용할 수 있는 간단한 약선요리, 금기사항, 음식과 관련된 음식속담 등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약선의 개념 현대인은 너나없이 건강과 보양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하여 약선(藥膳)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한다. 약선, 또는 식료(食療)란 무엇인가? 음식물을 섭취하여 질병에 대한 치료를 하고 예방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예부터 전해오는 동양철학인 한방의 기본적 이론을 그 토대로 하고 있다. 자연을 지배하는 원리가 인간의 몸을 지배하는 원리와 같다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 약선의 기본이론이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줘야 하고 무더운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줘야 하며 몸의 한열(寒熱)이나 허실(虛實)의 균형이 치우쳐진 것을 잘 조절 해줘야 한다. 질병의 성격이 치우쳐진 것은 그쪽을 치료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약선이란 없다. 그래서 약선이란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약선의 기본원리는 음양오행설과 병인학설 등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약선 이론의 지침이 되고 있다. 음양이란 자연계에 있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양(陽)적인 것과 음(陰)적인 것으로 나눠 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음과 양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조화롭게 평형을 유지하게 된다. 또한 약선은 병이 난 후 보다는 병이 나기 전에 미리 예방한다는 동양의학의 치미병(治未病)의 원칙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음양오행설 음양과 오행학설은 동양철학의 기본이론이자 한방의 기본적 이론으로 식품재료의 성질을 설명하고 있다. 음양학설에서는 그 식품을 섭취할 때 흥분되거나 발열되는 재료 즉 파, 생강, 마늘, 고추, 후추, 겨자, 등은 ‘양성’으로 간주하는데 이러한 식품을 먹어서 그 결과로 체온을 높여줄 수 있으며 한랭한 증상을 제거해 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반면에 먹고 나면 체온이 저하될 수 있으며 청량한 감각을 가져오는 식품재료로 박하, 수박, 배 등은 ‘음성’으로 간주한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기본으로 하는 오행에 의해서 식품재료의 성질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흰목이버섯(白木耳)은 그 색깔이 희므로 주로 ‘금’에 속하여 폐를 튼튼하게 하며, 검은 목이버섯(黑木耳)은 그 색깔이 검기 때문에 ‘수’에 속하여 신장을 튼튼하게 한다. 설탕은 달기 때문에 ‘토’에 속하여 비위(脾胃)를 튼튼하게 하는 이치를 간파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오행학설을 식물요법에 응용한 예라 할 수 있다. 오행학설 가운데에는 또한 상생, 상극의 이치가 있어 상호 협동과 길항작용을 하는 등의 복잡한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 오행학설에서는 5장, 5체, 5관, 5색, 5미, 5취, 5축, 5곡, 5과, 5채 등을 귀속시키고 있다. 오행 귀속표 이와 같은 오행귀속표 내용을 이해하고 식물의 특성 즉 성질, 색깔, 맛, 냄새, 품종 등을 오행학설에 귀속시키면 음식물로 하여금 건강을 위한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하는 측면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병인학설 전통의학의 병인학설은 대개 ‘육음’ 즉, 풍(風), 한(寒), 서(署), 습(濕), 조(操), 화(火) 등 외기(外氣)의 침습과 칠정(七情) 즉 희(喜), 노(怒), 우(優), 사(思), 비(悲), 경(驚) 등의 감정의 과도 및 음식, 과로, 담음, 어혈 등의 병인으로 귀납된다. 고대 동양에서는 식품의 적절한 활용으로 상기의 여러 가지 병인을 제거할 수 있으며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면 파뿌리는 풍사를 제거할 수 있고, 생강은 한사를 제거하며, 녹두는 열사를 제거하고, 수박은 서사를 제거하며, 율무는 습사를 제거하고, 날배는 조사를 제거하며, 무는 식체를 제거하고, 살구씨는 담사를 제거하며, 산사는 어혈을 제거하는 등의 작용은 병인학설과 식품의 접목이라 할 수 있다. 약선식품의 성질과 작용 약선에 쓰이는 식재와 약재는 이런 음양오행이론에 따라 각각 4성(四性)과 5미(五味)라는 특성으로 구분한다. 4성이란 자연의 상태에서 약재와 식재에 주어진 음과 양의 편중된 성격을 말하는 것으로 차가운 한성(寒性), 서늘한 양성(凉性), 따뜻한 온성(溫性), 뜨거운 열성(熱性) 네 가지를 말한다. 이중에서 한성과 양성은 음에 속하고 온성과 열성은 양에 속한다. 다섯 가지 맛이란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으로써 각기 다른 식품재료의 맛을 말한다. 맛과 식물의 효능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맛이 다르면 그 작용 또한 다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신맛을 지닌 매실은 수렴작용과 체내의 진액을 증진시키는 작용을 하며, 쓴맛을 지닌 하늘타리는 청열량혈(淸熱凉血) 작용을 하고, 단맛을 지닌 맥아당은 몸을 보하고 소화를 도우며 동통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하며, 매운맛을 지닌 고추는 체내의 한사를 없애주는 작용을 하며 짠맛을 지닌 해파리는 연견산결(軟堅散結) 작용을 한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뿌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약속 시각보다 일찍 도착한 기자의 방문에 조금 당황하는 모습이지만 분주한 손놀림은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 권재식(67)씨는 반죽을 하느라 바쁘고, 어머니 장옥자(63)씨는 경단 만들 재료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준비한다. 아들 권태운(38) 씨는 호박 가루를 저울에 달아놓고는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며느리 주은경(32) 씨는 밀려드는 주문전화를 메모하면서 갓 쪄낸 떡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바쁘다. 지난 9일 중부동에 위치한 ‘궁중떡집’은 설 명절을 한 달이나 앞두고 있음에도 밀려드는 주문전화로 가게 안이 분주했다. 권재식ㆍ장옥자 부부가 1995년 울산에서 시작한 수암떡집은 지난 2000년 5월 양산으로 옮겨 오며 ‘궁중떡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아들 태운 씨가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떡의 고급화에 도전하면서 바꿔 단 이름이다. 좋은 재료와 정성스런 수작업 궁중떡집의 영업 노하우는 사실 간단하다.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고 제조 과정 대부분을 수작업으로 한다. 떡에 들어가는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원산지와 계약재배를 한다. 지난해엔 좋은 호박을 구하기 위해 전라남도 해남의 농가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 밤떡에 들어가는 밤 역시 작업하기 쉬운 ‘굵은 밤’이 아니라 손질은 번거로워도 맛이 좋은 밤을 골라 한 알 한 알 손수 손질한다. 경단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구슬만큼 떡을 떼어내 속을 넣고 일일이 손으로 굴려 고물을 입힌다. 까다로운 재료 선택에 일일이 손맛을 담다 보니 제작 시간은 더디기 마련이다.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궁중떡집이 소비자들에게 ‘진정성’과 ‘자부심’을 자랑할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노력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공장 떡 양산으로 시장 왜곡 사실 떡은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각종 기념일에 빠질 수 없는 축하음식이었다. 그 시대 떡은 전통음식임과 동시에 일상의 음식이었고, 맛있는 간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식습관이 바뀌면서 떡은 현대 소비자들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생일상과 각종 기념일에는 떡보다는 케익이나 빵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떡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궁중떡집’ 역시 이러한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수암떡집’ 간판으로 울산에서 장사를 할 때와는 많이 달랐다. 대대로 이어진 손 맛 하나 믿고 양산으로 옮겨왔지만 개업 후 2년 동안 급격히 매출은 줄어들었고, 주변에 가게의 존재를 알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전체 떡 소비시장의 규모는 점차 줄어들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공장에서는 대량으로 떡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이른바 ‘공장 떡’이 마트와 빵집 등 소비자의 손길이 닿기 쉬운 곳부터 점령하기 시작했다. 파리바게뜨로 유명한 SPC그룹은 2006년 프랜차이즈 떡집 ‘빚은’을 출시하고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초콜릿, 블루베리 등을 넣은 퓨전 떡과 빙수 메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5년 만에 매장은 전국 160개로 늘었다. 떡 시장이 이처럼 대형화하자 떡집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직접 떡을 만드는 대신 공장에서 생산된 떡을 구입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편하기 때문이다. 맛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됐고, 쌀가루와 씨름하지 않아도 됐다. 이들 가게는 소비자들이 ‘공장 떡’과 수제 떡을 구분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결국 똑같은 공장 떡이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떡은 맛과 개성을 잃었다. 기본을 잘 지킴으로 승부 “공장 떡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떡집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장사가 가능하니까요. (떡을 만들기 위한) 기계가 필요 없으니 자본도 적게 들고 인력도 필요 없게 됐죠. 하지만 공장 떡이 시중에 깔리면서 모든 떡집의 맛이 똑같아집니다. 저희 집이 좋은 재료를 쓰고 많은 수작업이 들어가다 보니 다른 집들보다 조금 비쌉니다. 하지만 손님들은 항상 저희 가게를 찾아주시죠. 왜일까요? 당연히 맛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취재를 하는 동안에도 손님이 끊임없이 들락였다. 집이 근처에 있다는 손님은 최근에야 궁중떡집을 알게됐지만 이제는 어느새 단골이 됐다. 자녀의 학교 행사에서 처음 떡을 접했다는 다른 손님은 요즘 궁중떡집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고 한다. 이처럼 손님이 또 다른 손님을 부르는 궁중떡집은 공장 떡의 편리함 대신 좋은 재료와 정성을 선택했고, 이는 골목상권 성공의 핵심 비결이 바로 ‘기본을 잘 지키는 것’에서 출발함을 증명했다.
권태운 씨는 식습관이라는 문화가 달라지는 만큼 이에 맞춰 떡도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권 씨가 전통의 떡을 기본으로 그 속에 다양한 현대적 감각을 접목하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권 씨는 해마다 한국떡류식품가공협회에서 주최하는 각종 연수와 교육에 참여하고, 업계 ‘명장’을 찾아 기술을 사사받기 위해 발품을 판다. “사실 떡이란 음식도 많은 기술과 나름의 ‘비법’이란 게 있어서 남들에게 그런 것들을 노출하기 꺼려하죠. 이렇게 폐쇄적이다 보니 오히려 기술 개발이 힘듭니다. 자신만의 비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배타적 문화를 뛰어넘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죠” 권 씨는 지난해 제6회 전국 떡 명장 선발대회에 참가했다. 결과적으로 농림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지만 사실 참가 목적은 수상에 있지 않았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성패를 떠나 도전 그 자체에서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권 씨는 맛과 더불어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권 씨는 맛 하나 믿고 유명해지길 기다리는 것은 너무 소극적 자세라고 지적한다. 권 씨가 최근 전국 떡 명장 선발대회 장관상 수상 내역을 현수막으로 만들어서 지역 곳곳에 내건 것 역시 ‘능동적 홍보’의 하나다. “저희가 이곳에 문을 연 지 13년이지만 아직 손님 중에 우리 가게 존재를 몰랐던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 집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지긴 했다지만 입소문에도 분명 한계가 있는 거죠.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홍보는 다양한 방법으로 가능합니다. 더 이상 실력 하나만 믿고 앉아서 기다리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인도에 파견 나온 외국의 지사나 투자진출 기업들을 보면 현지인을 활용하는 정도가 우리보다 매우 높다. 제조업체의 경우는 당연히 인도 노동자의 비율이 높지만, 종합상사의 경우에도 현지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지직원을 활용하라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인도인은 지능이 높고 인건비는 싸다.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경력 3~5년 정도 고급 인력의 인건비가 300~500달러 정도다. 우리나라의 상사 주재원의 경우 월 급여·주택 임차료·차량 유지비·자녀 교육비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인 주재원 한 명이면 인도인 10~20명을 활용할 수 있다.
붉게 타오르는 저 태양은 어제와 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해를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은 더 나은 내일을 염원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진심을 담아 여러분 가정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세계적인 불황과 계속되는 경기 침체 속에서 나아갈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겠지만, 그 속에는 분명 희망이 있습니다. 대선이 치러진 지난 2012년을 지성인들은 거세개탁(擧世皆濁)이라는 사자성어로 규정했습니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은 위정자들에게만 국한된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모두가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야 할 때입니다. 따라서 양산시민신문의 역할인 비판과 감시의 역할뿐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데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양산시민신문의 가치는 양산을 벗어나서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정책 공약을 내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지역균형과 지방분권정책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러한 중앙정부의 공약과 우리 지자체의 정책들이 지역민의 입장에서 실천되도록 독려하고 단 소리와 쓴 소리를 끊임없이 해나가겠습니다. 감히 지역신문이 무엇을 하겠느냐는 걱정 섞인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양산시민의 삶이 평온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중심인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우리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양산의 이해를 분명히 밝히는 신문이 되겠습니다. 이를 위해 시민신문 스스로의 자기반성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올 2013년 양산시민신문은 꼭 10년을 맞이합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양산시민과 독자 여러분과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가없는 사랑이 있었기에 재정, 인력의 한계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나온 10년을 거울삼아 향후 10년을 내다보며 끊임없는 발전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 앞으로의 10년, 양산시민신문은 지면신문의 한계를 극복하고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양산의 삶을 담아낼 것입니다. 세월의 무게와 연륜에 부끄럽지 않도록 뿌리는 더 깊게, 가지는 더 무성하게 피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당부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시민과 언론의 보다 근접한 관계를 지향하는 공공저널리즘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양산시민신문>은 2013년 새해를 맞아 시민독자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는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양산의 과거와 현재를 사진으로 비교해 보면서 미래의 비전을 확인해 보는 ‘양산의 어제와 오늘’, 거대자본과 맞서 저만의 생존법으로 골목상권을 지켜가고 있는 소상공인을 소개하는 ‘골목상권의 강소업체’ 연재를 시작합니다. 독자들의 관심사를 찾아 함께하는 공공저널리즘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신년 기획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시민과 언론의 보다 근접한 관계를 지향하는 공공저널리즘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양산시민신문>은 2013년 새해를 맞아 시민독자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는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양산의 과거와 현재를 사진으로 비교해 보면서 미래의 비전을 확인해 보는 ‘양산의 어제와 오늘’, 거대자본과 맞서 저만의 생존법으로 골목상권을 지켜가고 있는 소상공인을 소개하는 ‘골목상권의 강소업체’ 연재를 시작합니다. 독자들의 관심사를 찾아 함께하는 공공저널리즘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신년 기획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남서쪽으로는 낙동강과 접한 호포로부터 북동으로 읍내에 이르기까지 3백만평이 넘는 들판은 작황이 형편없었던 옛 조선시대부터 메기들(타어평, 魚平)으로 불렸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대규모의 경지정리사업 추진 결과 양산을 대표하는 곡창지대로 발전했다. 양산천과 북부천 등을 이용한 안정된 용수 공급과 일조량이 풍부한 기후조건, 거기에 기계영농이 가능한 대단지화 효과까지 겹쳐 매년 벼농사의 풍작을 이어왔다. 메기들과 양산천은 추억이 깃든 곳
문화의 불모지 양산을 문화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예술촌은 그 시도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한송예술인촌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관 주도의 경우 대부분 성공하기 어렵다. 그 주된 이유가 예술촌을 조성하면서 경관 등 입지여건만 내세우는 공급자 중심의 정책을 펼쳐, 그 공간내에서 콘텐츠를 이끌어 내야 할 예술가들이 외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주도하는 사례 중에서 양산은 적어도 실패한 사례는 아니다. 입주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문화예술관광 활성화의 측면에선 그렇지 않다. 시민의 입장에서 세금을 들인 예술촌에서 내가 혹은 우리가 문화콘텐츠를 얼마나 즐길 수 있는 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점에서 한송예술촌은 시작점에 있다. 양산의 경우, 준공단계에 이르렀다. 시와 한송예술인촌이 업무협약을 맺고 전문사무국을 두어 체계적인 운영을 해나가야 한다. 예술가는 창작에 중점을 두고, 전문사무국은 예술 콘텐츠를 시민과 잘 연결할 수 있도록 기획을 해야 한다. 또 중요한 점을 들자면 ‘축제’의 강화이다. 헤이리의 ‘판페스티벌’은 이미 국내 및 세계에서 관심을 갖는 종합축제다. 축제기간 중 창작공간을 개방하는 것은 필수이다. 남해원예예술촌도 꽃이 만발하는 5월 화려한 축제의 장을 벌인다. 축제는 그 지역을 알리는 가장 큰 수단이다. 예술인촌의 활성화를 위해서 중요하게 도입되었으면 하는 것이 남아 있는 7개 터를 관에서 매입하여 체류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예술인거주프로그램(레지던시)를 운영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작가들의 에술적 참여를 확대하고자 함이다. 예술과 경영은 수레의 양바퀴다. 어느 한 쪽을 무시해서는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다. 예술인들이 비싼 돈을 들여 입주한 만큼 그에 따른 경영적 활동도 보장해 줘야 한다. 헤이리의 경우 문화전시관을 3분의 1 이상 운영하면 어떠한 경영활동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예술로 충당되지 않는 비용을 카페 등의 운영으로 감당하라는 뜻이다. 예술촌, 그들의 축제가 우리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10년 후 삽량문화축전보다 외지인들이 더 많이 즐겨찾는 한송예술축제를 기대해 본다.
어린이날맞이 가족음악회, 한송아트홀 송주섭 초대전, 갤러리희 진영섭초대전, 하북면민의 날 기념 2012 평면작품전시회, 삶에 아름다운 음표그리기 합창단 창단, 양산여름음악제. 2012년 한 해 한송예술촌에서 진행된 예술활동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국·도비 111억원, 민자 207억원의 비용이 아니더라도 종합전시동인 한송아트홀이 운영 중이고, 개인창작동 39개동 완공되어 현재 입주 및 거주 예술인이 45명이라고 하는 한송예술촌의 예술활동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